제주 토박이의 제주 집 짓기

[City] 독특한 풍속과 문화가 있는 삶의 터전, 제주
ⒸYoon, Joonhwan
에디터. 김윤선  자료.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 FHHH friends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천혜의 섬, 제주.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 전체 면적의 약 10%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빼어난 자연환경을 보유해 사계절 내내 여행자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여행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제주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다. 그들에게 제주는 관광지도, 환상의 섬도 아닌 그저 지속해온 삶의 공간일 테다.
독특한 풍속과 문화가 있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제주. 제주의 한 호젓한 마을에 제주 토박이의 집을 지은 건축가와 그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눠봤다.

 

ⒸYoon, Joonhwan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제주도 세거리집’이 위치한 동네는 어떤 곳인가요?

삼양동은 제주도 북쪽에 있는 마을이에요. 관광지가 아니라 제주도 사람들이 사는 일반적인 주거지역이고요. 검은 모래 해변과 가까워서 집 옥상에서 바다 풍경이 원경으로 보여요.
설계하기 전에 현장답사로 처음 동네를 구경하는데 ‘머리가 큰’ 주택들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주도 집들이 주로 이런데, 아마도 상징적인 게 아닐까 싶어요. 제주도가 바람이 세니까 그에 대한 대비죠. 본능적으로 몸에 밴 제주도 건축만의 습성, 일종의 ‘건축가 없는 건축’ 이랄까요?

 

ⒸFHHH friends
ⒸFHHH friends

 

그러고 보니 동네 집들이 하나같이 지붕 부분이 두꺼워 보여요.

육지와는 달리 옥상 파라펫이 두꺼워요. 이 동네에 있는 많은 집들이 그렇게 생겼어요. 지붕에 기와를 올린 전통적인 집도 있었고요. 따로 쓰는 것 같은데 하나처럼 보이는 집도 있었고, 증축을 했지만 위화감 없이 그 위계가 비슷해 보이는 집, 계단이 독특한 집 등 흥미로운 풍경이 많았어요. 여긴 한적한 시골마을이니까 그런 마을의 분위기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FHHH friends
ⒸFHHH friends

 

제주도 토박이가 제주도에 집을 짓는다면?

 

건축주가 제주도 사람이라고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주 사람이에요. 보통 제주도에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건축주들이 원래는 육지 사람인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제주도가 육지의 도피처 같은 곳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이 분도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팔남매가 전부 제주에서 살고 있는 진정한 제주 토박이더라고요. 40대 초반 남성분이었고, 아내와 7세 이하 어린 세 자녀, 그리고 70대 부모님. 이렇게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었어요. 

 

삼대가 함께 사는 건축주 가족 ⒸYoon, Joonhwan

 

제주에 사는 건축주가 서울에서 작업하는 푸하하하를 어떤 경로로 찾아왔나요?

건축주가 토목시공을 하는 분이라 일을 하면서 집 지을 때 필요한 히든카드들을 드래곤볼처럼 모아 놓으셨대요. (웃음) 그걸 바탕으로 제주도에서 설계사무소를 물색했는데 별로 성에 차지 않으셨나 봐요. 제주도만의 집 짓는 방식도 있지만, 요즘은 제주도에서 짓는 집들도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그러다가 육지에 있는 저희와 해보면 재밌겠다 싶어 찾아오셨대요. 보통 건축주가 저희랑 하겠다고 맘먹고 오시면 거의 바로 결정하시거든요. 이 건축주도 그런 케이스였고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됐죠. 어떻게 보면 되게 당연한 건데, 제주 토박이가 제주도에서 살 집을 짓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주도 사람의 제주도 집, 재밌겠다!’ (웃음) 하지만 저는 육지 사람이니까, 더 많이 공부하고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주의 집은 육지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집을 지으려고 하셨어요?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돌담이라든지 유채꽃이라든지. 설계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 그런 걸 배제하려고 했어요. 여기는 제주도니까 돌담이 있어야 되고, 유채꽃밭이 있어야 되고.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육지에서 살던 사람이 제주에 가서 제주를 느끼고 싶은 집이라면 그런 게 좋겠지만 제주도 사람에게 이미 삶의 일부인 것들을 강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제주의 기후와 문화, 건축주의 생활 습성을 잘 반영해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집, 제주도 사람에게 편한 집을 설계하고 싶었어요. 몸에 꼭 맞는 옷 같은 집.

 

제주도의 풍경 ⒸGettyImages

 

집 바꿔 살기

 

‘제주도 세거리집’이라는 집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요.

집이 세 갈래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있기도 하고요. ‘거리’가 세 개 있다는 의미, 즉 ‘삼대’를 위한 집이 ‘세 개’ 있다는 의미로 이름 붙였어요. ‘거리’는 한 채, 두 채 하면서 집을 세는 단위를 말할 때 쓰는 단어인 ‘채’라고 보면 돼요. 제주의 전통 가옥들은 ‘안거리’와 ‘밖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안거리는 안채, 밖거리는 바깥채를 말하죠.

제주도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안거리’에서 살다가 독립할 때가 되면 집 터 안에 집을 따로 지어주는 풍습이 있어요. ‘밖거리’를 새로 지어 집 안에서 독립을 시켜주는 개념이에요. 안거리와 밖거리에는 각 집마다 화장실과 부엌이 갖춰져 있어서 취사와 식사는 물론 모든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완전히 독립적인 집이에요. 그렇게 살다가 자녀가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제사권을 넘겨줄 때가 되면, 서로 집을 바꿔 산다고 해요. 제주도 사람들의 가족 구성과 생활방식을 반영하는 제주도만의 집 문화예요. 아! 제주에 놀러 가서 전통 가옥을 개조한 숙소에 묵어보셨다면 이미 경험해보셨을 수도 있어요. 대부분 안거리는 객실, 밖거리는 주방으로 개조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주 전통가옥의 안거리와 밖거리
현황측량도. 제주 세거리집은 마을의 삼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FHHH friends

 

집을 바꿔 산다는 개념이 무척 새롭네요.

문헌에 따르면 집을 바꿔서 자식이 큰 집인 안거리에 살고, 부모가 작은 집인 밖거리에 살면서 자식이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거래요. 밤이 되면 안거리에 있는 자식은 부모님이 계시는 밖거리에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요. 부모님이 주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잠자리에 드는 거죠. 부모는 집 안에서 자식을 독립시키고, 자식은 부모님이 건강하신지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현재 집 터에 있던 기존 집은 안거리와 밖거리가 있는 전형적인 제주도 집이었고, 건축주 가족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건축주의 셋 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밖거리에서 살기에 공간이 너무 좁아져서 부모님과 집을 바꾸려고 했는데, 안거리가 너무 낙후되고 밖거리 역시 습기가 많고 환경이 좋지 않아서 집을 새로 짓게 되었어요.

 

안거리와 밖거리의 제주 전통가옥 구조를 간직하고 있던 기존 집 ⒸFHHH friends

 

제주도 사람들만의 독특하면서도 합리적인 생활 방식이 느껴져요.

맞아요. 허례허식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 집을 지으면서 제주도를 다녀보니까 말도 좀 짧더라고요. 예를 들면 밥 먹었냐고 물어볼 때 제주도 사투리로는 “밥 먹언?” 이런 식이에요. (웃음)
제주가 화산섬이라서 벼농사가 잘 안된대요. 하지만 옛날에 농경을 주업으로 하던 때에는 어떻게든 벼농사를 해야만 했으니까 남자들은 논에 가서 일을 했겠죠? 하지만 그걸로만 먹고 살 수 없었기에 여자들은 바다와 밭으로 갔대요. 그렇게 여자들도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권이 생겼고, 남자와 여자의 위계가 흐릿해졌다고 해요. 제주도의 집 문화나 생활방식이 그런 데서 자연스레 기인했을 수도 있겠네요.

 

검은 모래 해변이 보이는 집

 

집에 관한 건축주의 특별한 요구 사항이 있었나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딱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일 년에 한번 제주에 흩어져 사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것. 또 하나는 옥상에서 검은 모래 해변이 있는 바다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앞서 동네 사진으로 봤지만 제주도 집하면 좀 납작하고, 넓고, 평평한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하지만 바다를 보기 위해선 1층으로 할 수는 없었고, 2층으로 만들어서 옥상에서 바다를 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건축주가 계속 단층에 살아왔는데 집에서 꼭 바다를 보고 싶다는 얘길 많이 하셨거든요.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사는 제주도 사람의 소망치곤 좀 소박하죠? (웃음) 그래서 그것만은 꼭 들어드려야겠다 마음먹었죠.

 

ⒸYoon, Jo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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