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섬세함을 짓다

[Interview] 김대균 착착 건축사무소 소장의 ‘배려하는 건축’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사람, 풍경, 동네, 분위기, 소통···.
김대균 착착 건축사무소 소장의 말에는 유독 온기 가득한 단어와 문장이 넘쳐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도 특유의 따스함이 묻어 있다. 좋은 공간이란 배려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그에게, 집 짓기란 곧 ‘보편적인 섬세함’을 짓는 일이다.

 

김대균 착착 건축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풍년빌라는 특유의 따뜻한 정서가 느껴지는 집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집을 구체화하기 위한 생활의 디테일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가구’예요. 가구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인데, 한자로 하면 집 가(家)에, 갖출 구(具) 자를 쓰거든요. 여기에서 구(具)는 ‘구비하다’, ‘구체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집을 구체화하는 게 바로 가구죠. 집을 구체화한다는 건 한편으로 집의 행위를 구체화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가구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오브젝트 타입으로 공간에 영향을 주는 가구, 두 번째는 공간의 스케일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맞춤 가구예요. 풍년빌라에서 쓰인 건 두 번째죠. 가구는 처음부터 완전히 세팅하지 않고, 살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쓰는 사람이 어떤 걸 원하는지를 보면서 차차 마련해나갔어요. 이렇게 집과 행위를 구체화하는 것들이 그 공간에 있는 사람에 맞춰져 있어 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요.

 

풍년빌라 ⓒBRIQUE Magazine

 

어떤 공간이든 결국 사는 사람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구와 사물, 빛과 재료… 이런 것들이 결합해 그 공간의 풍경과 질이 만들어져요. 이는 건축가가 어떤 태도로 어떤 감각을, 거주자가 어떤 생활을 담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또 달라지겠죠. 그러니까 공간의 바탕에는 인문학, 즉 사람에 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전함과 아름다움은 기초적인 거고, 그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죠. 가장 큰 목적은 사람과 공간이 서로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예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모습, ‘인문학적인 바탕 위에 보편적인 섬세함’을 추구하는 건축이에요. 여기에서 보편적인 섬세함이라는 건, 예술혼을 발휘한 정교성의 섬세함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적정성’의 섬세함을 말해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섬세하고 배려가 있는 태도. 작가주의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보편성과 경제성, 사는 사람의 환경과 일상생활 속에서 섬세한 조율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착착 건축사무소 내부 ⓒBRIQUE Magazine
김대균 소장이 직접 만든 손잡이 없는 서랍장 ⓒBRIQUE Magazine

 

풍년빌라는 완전히 사적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공적이지도 않은 공간이 세대마다 있어 서로를 연결해준다는 점이 특징적이에요. 지인 공동체가 모여 사는 집이라 가능했던 걸까요?

198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제 기억 속엔, 동네에서 이웃들이 어떻게 교류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요. 주로 어머니들이 서로 집에서 만든 음식을 건네면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어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아이들이 골목길을 지나 이웃집에 반찬을 나르거나, 골목길에 있는 평상에 앉아 이웃들끼리 수다 떠는 장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게 무척 흔한 풍경이었거든요. 옆집 아저씨한테 인사 안 하면 혼나고 그랬죠. (웃음) 그때 거기에 특별한 공간이 있어서 이웃들 간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저 역시 그런 상황을 지금 시대에 맞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기에 놓으려고 했어요.

마치 옛 동네의 골목길 같은 공간이네요.

사실 저는 이 집을 설계할 때 이분들이 지인 공동체가 아닌 상황을 자주 상상해봤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살더라도, 완전히 닫힌 공간이 아니니까 인사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공간, 서로의 깊숙한 생활을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가벼운 소통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았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평면을 복층 구조로 만들고 현관 공간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현관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전환이 일어나는 장소이고 사적 공간이지만 공적 성격을 가지기도 해서, 이곳을 확장해서 생각해봤죠. 아무리 공간을 잘 만들어 놓아도 자발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절대 작동하지 않거든요. 결국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야만 가능해요. 그러기 위해 건축가는 그런 상황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겠죠.

 

풍년빌라 입구 ⓒBRIQUE Magazine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요?

이 공간에서 뭔가를 하라고 정의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분위기를 적절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의도하는 게 중요해요. 또 그 지역의 문화가 녹아있어야 해요. 문화가 다르면 작동하지 않죠. 만약 일본에 어떤 공간이 있으면 일본 사람들은 철저하게 그 공간의 룰을 지키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게 그 사람들의 문화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없어요. 다만 공간에 주인이 있어서 그 사람이 규칙을 정하고 책임감을 느끼며 소유와 관리를 한다면 가능해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적인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한 주객 구조가 있어요. 풍년빌라 역시 각자 집에 주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유지되는 게 가능하다고 봐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구조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죠. 문화가 다르니까.

어떤 공간이든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살피는 게 설계의 기본이군요.

문화적 맥락 역시 보편성에 기반해야 해요. 추녀, 기와, 처마 등 우리가 전통 건축에서 ‘한국적인 것’, ‘우리만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동아시아는 다 비슷하거든요.
유교, 불교, 도교 – 유불선(儒佛仙) 사상 안에서 95%는 한국, 중국, 일본이 다른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사실로 비추어봤을 때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게 힘이 있다고 봐요. 형식에서 나타나는 큰 지형이 중요하죠. 유럽에 어느 나라를 봐도 ‘이 건축 형식은 우리만의 것이야.’ 하는 나라가 거의 없거든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것이 뭘까 찾다 보면 음식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우리나라 음식 중에 제일 대표적인 게 발효 음식, 그중에 장이 있어요. 된장, 고추장, 간장… 장은 계속해서 발효되는 음식인데, 다 완성되는 게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풍년빌라 1층 ⓒBRIQUE Magazine

 

장을 다 먹을 때까지가 아닐까요? (웃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웃음) 그런데 몇 백 년 된 ‘씨 된장’, ‘씨 간장’이라는 게 있잖아요. 최초의 것이 계속해서 숙성하는 가운데 있으니까 장은 어찌 보면 영원한 거거든요. 동양 사상에서 이 개념이 중요해요. 서양에서는 사계절이 순환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양에서는 이걸 순환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는 무한한 것이라고 봐요. 그 무한함 속에 인간이 어떻게 서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상이죠. 구례 화엄사에 각황전을 보면 한쪽 면은 근엄하고 깨끗하게 꾸며, 돌을 아주 정교하게 잘라서 붙였어요. 반면에 그 반대쪽은 지형에 맞춰 그와 닮은 자연석을 쌓았죠. 그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시간이 지나야만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다 지었을 때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비로소 그것을 완성하죠. 그런 시간성이 묻어나는 디테일을 우리나라 건축에서 아주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집 역시 우리가 집을 다 짓는다고 해서 완성이 아니라, 살면서 완성이 되어 간다고 생각해요. 그런 무한함의 과정과 관계를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우리의 문화적 맥락도 살필 수 있죠. 된장을 만드는 마음이나, 집을 짓는 마음이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매한가지예요.

풍년빌라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외부에서 쓰인 재료가 내부에도 쓰이면서 내부와 외부가 한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카페 앞 담의 타일이 카페 내부에도 쓰였다거나, 1층 마당에 있는 담의 나무가 집 안에도 똑같이 쓰였다거나.

제가 궁궐의 행랑(대문 양쪽 또는 문간 옆에 있는방으로, 안채, 사랑채 주위에 둘러 있으며 주로 하인이 거처하던 방)에 관해 석사 논문을 썼어요. ‘내부적 외부공간, 외부적 내부공간’이라는 것이 그 내용의 핵심이죠. 동궐도형(근대식 지도제작 기법으로 창덕궁, 창경궁을 그린 평면도)을 보면 행랑에서 문을 양방향으로 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상황에 따라 같은 줄에서도 다른 방향으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죠. 이걸 연구하다 보니 둘러싸인 네 칸이 다 정면이면 사적인 공간이자 ‘내부’가 되고, 다 배면이면 공적인 공간이자 ‘외부’가 된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리고 이 공적인 공간을 다 연결해보면 그게 사람들이 다니는 길, 즉 동선이 돼요. 그러니까 마당과 행랑이 연속되면서 그 공간 자체가 길이 되는 거죠. 어떤 디자인적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랑이 가지는 정면성과 배면성을 통해 마당은 내부가 되기도 하고, 외부가 되기도 해요. 결국, 그 공간은 내부적 외부공간이자, 외부적 내부공간이에요.

저는 그런 내부적 외부공간, 외부적 내부공간을 만드는 것이 설계에서 중요하다고 봐요. 말씀하신 것처럼 카페 앞 담벼락에 쓰인 타일이 카페 내부에도 쓰였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는 유리가 있어서 시각적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인지가 되죠. 그러면 전체 공간이 외부지만 내부 같고, 내부지만 외부 같은 굉장히 새로운 공간감이 만들어져요.

 

풍년빌라의 내부적 외부 공간 ⓒBRIQUE Magazine

 

명동성당에서 성당보다 10년 먼저 지어진 주교관 건물을 역사관으로 바꾼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에서는 2층 홀과 휴게공간 사이에 곡면 유리벽을 설치했어요. 앞마당과 휴게 공간, 그리고 홀 공간의 상호 관계를 만들면서, 내부 공간을 외부 공간으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죠.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CHAKCHAK STUDIO

 

‘안성 게스트 하우스’에는 행랑과 같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이 공간이 정면과 배면에 두 개의 외부 공간을 접하고 있어요. 따라서 행랑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경계가 유연해지고 앞마당과 뒷마당의 역할이 가변적으로 바뀌어요. 

 

안성 게스트 하우스 ⓒCHAKCHAK STUDIO

 

‘한옥 지금ZIKM’에도 비슷한 공간이 있어요. 안채와 마당의 경계에서 벽이 처마, 유리, 화강석, 마루, 기둥, 스크린까지 총 6개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외부와 내부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이 경계에서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에 따라 외부인지 내부인지가 결정돼요. 스크린까지 완벽하게 치면 온전한 내부가 되고, 전부 열면 외부가 되죠. 때로는 중간 성격의 공간이 되고요. 어떤 레이어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요.

 

한옥 지금ZIKM. 스크린을 걷었을 때 ⓒCHAKCHAK STUDIO
한옥 지금ZIKM . 스크린을 쳤을 때 ⓒCHAKCHAK STUDIO

 

마지막 질문이에요. ‘좋은 공간, 좋은 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는 그의 책에서 ‘감동을 주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어요. 우선 그에 깊이 공감합니다. (웃음) 덧붙이자면 ‘배려하는 공간, 배려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배려하는 디자인이 필요하죠. 사람이든, 환경이든, 지역이든.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공간과 건축은 지역을 더 좋게 만들고, 지역은 문화를 바꾸고 결국 사회가 좋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를, 무엇을 배려하든지 간에, 이 배려에는 상대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윤증고택(尹拯古宅)*에 가면 안채를 지나 사당으로 가는 길에 모래보다 크고 자갈보다 작은 돌이 깔려 있어요.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질 때 물이 떨어져 땅이 파이지 않도록 하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돌을 썼죠. 매일 아침 사당에 가는 길목에서, 그 길목을 지나는 누군가의 발길과 수고를 생각하며 그 사람을 구속하거나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기능을 다하면서도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디자인. 시각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반복하는 일상에서 무엇도 압도하지 않는 것들. 그것이 바로 배려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풍년빌라에서도 그런 마음을 담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세 가족이 각자 서로를 잘 알고 배려의 마음으로 함께 공간을 가꾸는 것. 그런 배려의 마음이 있다면 이 집도 좋은 공간, 좋은 집으로 남을 수 있겠죠.


*윤증고택(尹拯古宅)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 조선시대 정치 및 학계의 중심인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향촌 사대부 집의 전통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관련 기사 : 

 

풍년빌라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2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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